[AI 교육] 1. 숙제 : AI가 대신 써주는 시대,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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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1화 — 서른 편의 독후감

어느 국어 교사의 책상 위에 서른 편의 독후감이 쌓여 있다. 몇 년 전까지 이 교사는 첫 문단만 읽어도 알 수 있었다. 이 아이가 책을 읽었는지, 줄거리 요약 사이트를 베꼈는지, 부모가 대신 써 줬는지.

문장의 결, 어휘의 높낮이, 논리가 비틀거리는 지점 —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지문(指紋)이었다.

지금은 서른 편이 모두 잘 썼다. 문장은 매끄럽고, 구성은 안정적이고, 심지어 “초등학생다운 어색함”까지 자연스럽게 연출되어 있다.

교사는 이 중 몇 편이 아이의 글인지 알 방법이 없다. 탐지 도구를 돌려볼 수는 있지만, 그 도구가 성실한 아이를 잘못 지목했을 때 아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 장면 앞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대응들이 있다. 탐지 프로그램을 도입하자, 손글씨로 쓰게 하자, AI 사용 서약서를 받자. 모두 필요할 수 있는 조치다.

다만 이 조치들만으로는 닿지 않는 층이 하나 있다는 것이 이 연재의 출발점이다. 달라진 것은 학생의 양심이 아니다. 숙제라는 오래된 장치가 그 위에 서 있던 세 개의 전제가, 시대와 함께 조용히 바뀌었다.

오늘은 그중 첫 번째 전제를 본다.

첫 번째 전제: 절차를 숙달하면 사고력이 생긴다

교육의 뼈대는 절차의 사다리다. 사칙연산을 익히면 방정식을 풀 수 있고, 방정식을 풀면 함수를 다룰 수 있고, 함수를 다루면 미적분에 도달한다. 영어 단어를 외우면 문장을 읽고, 문장을 읽으면 지문을 해석한다.

각 단계의 절차를 손에 익히는 것, 곧 반복 연습을 통해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게 되는 것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표였다.

이 사다리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절차 수행 능력이 이해의 증거라는 전제다. 이차방정식을 풀 줄 아는 아이는 이차방정식을 이해한 것으로 간주된다.

시험이 절차 수행을 측정해 온 이유도, 숙제가 절차 반복으로 채워져 온 이유도 이 전제 위에 있다. 그리고 이 전제는 오랫동안 실제로 잘 작동했다.

그런데 절차 수행의 가격이 0원이 되었다. 사진을 찍으면 풀이 과정까지 나온다. 어떤 절차든, 계산이든 번역이든 요약이든 코드 작성이든, 기계가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

절차 수행 능력은 더 이상 이해를 보증해 주지 못한다. 그 답안이 사람의 것인지조차 말해주지 못한다.

여기서 성급한 결론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니 절차 연습은 필요 없다”가 아니다. 어떤 절차는 여전히 몸에 새겨야 하고, 그 구분선이 어디인지는 이 연재의 뒷부분에서 정면으로 다룰 것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다. 절차 숙달을 목적지로 삼고 절차 수행을 증거로 삼는 방식은, 예전처럼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절차의 사다리를 다 오른 아이에게 주기로 했던 사고력을, 사다리를 오르지 않은 아이도 기계를 통해 흉내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사고력과 흉내를 가르는 것은 절차가 아닌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

절차가 증거의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숙제가 기대 온 나머지 두 전제 — 지식과 결과물 — 는 어떻게 될까.

다음 화 — 2화. 창고와 온도계: 지식과 결과물이라는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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