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육] 2. 지식 : 암기는 정말 쓸모없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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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2화 — 창고와 온도계 — 지식과 결과물이라는 전제

지난 화에서 숙제가 서 있던 세 전제 중 첫 번째 — 절차를 숙달하면 사고력이 생긴다 — 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았다. 오늘은 나머지 두 개다.

두 번째 전제: 지식을 보유한 만큼 교육받은 것이다

두 번째 전제는 더 오래되고 더 깊다. 교육받은 사람이란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관념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머릿속에 지식을 넣고 필요할 때 꺼내는 능력을 배움의 척도로 삼아 왔고,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책이 귀하고 정보가 느리게 흐르던 시대에 머릿속의 지식은 실제로 그 사람의 힘이었다.

검색 엔진이 등장했을 때 이 전제는 한 번 흔들렸지만 유지되었다. 검색은 “아는 것”을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색하려면 무엇을 검색할지 알아야 했고, 검색 결과를 읽고 조합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일이었다.

언어모델은 그 마지막 경계를 넘었다. 이제 기계는 지식을 보유할 뿐 아니라 조합하고, 요약하고, 설명하고, 응용한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대답한다.

지식 보유량만으로 배움을 재는 일은, 창고 크기로 물류 회사를 평가하는 일과 비슷해졌다. 창고는 이미 무한하고,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이 “그러니 이제 암기는 필요 없고 창의력을 길러야 한다”는 결론으로 건너뛴다. 이 결론은 절반만 맞고, 틀린 절반이 치명적이다.

무한한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 쓰려면, 꺼낸 물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봐야 한다. 언어모델은 유창하게 틀린다.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하고, 그럴듯한 숫자를 지어내고, 두 개념을 미묘하게 섞는다.

그 오류를 잡아내는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라 해당 개념의 정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지식의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식의 역할이 바뀌었다. 보여주고 인출하는 자산에서, 기계의 출력을 검증하는 잣대로. 이 전환은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세 번째 전제: 결과물은 학습의 증거다

세 번째 전제는 평가의 기술적 토대다. 학습 그 자체는 볼 수 없으므로, 학습이 남긴 흔적(답안지, 독후감, 보고서, 작품)을 본다. 결과물이 좋으면 학습이 일어났다고 추정한다.

이 추정은 결과물을 만드는 비용이 충분히 클 때만 성립한다. 독후감을 쓰려면 책을 읽어야 하고, 보고서를 쓰려면 자료를 찾아야 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결과물은 과정을 보증한다.

1화의 국어 교사가 마주한 것이 바로 이 보증의 소멸이다. 결과물 생산 비용이 0원이 되는 순간, 결과물은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서른 편의 매끄러운 독후감은 서른 명의 독서를 증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부정행위의 문제이기 이전에 측정의 문제다. 온도계가 더위를 재지 못하게 되었다면, 필요한 것은 질책이 아니라 새 온도계다.

측정이 달라지면 그 위의 모든 것이 함께 움직인다. 내신이, 수행평가가, 입시가 새 기준을 요구받는다. 그리고 가장 조용하게, 가장 깊이 영향을 받는 것은 학생 자신이다.

결과물을 만드는 수고로운 과정, 읽고 막히고 다시 쓰는 그 과정이 학습의 실체였는데, 결과물만 요구받는 학생에게는 그 과정을 건너뛸 완벽한 지름길이 항상 주머니 속에 있다. 열다섯 살에게 그 유혹을 매일 혼자서 이겨내라고 맡겨두기는 어렵다. 아이의 의지를 탓하기 전에, 구조가 아이를 도울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어른들의 일이다.

절차, 지식, 결과물. 숙제가 기대 온 세 전제가 모두 새 조건 위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하면 될까.

가장 흔히 들리는 답은 “AI를 잘 활용하는 인재를 기르자”는 것이다. 다음 화에서는 그 답 다음에 남는 질문을 본다.

다음 화 — 3화. “AI 활용 교육” 그다음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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