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9화 — 명세하는 힘, 검증하는 힘
지난 화에서 AI에게 일을 맡기는 첫 동작이 명세, 곧 원하는 것을 언어로 고정하기임을 보았다. 오늘은 결과물이 돌아온 뒤의 두 번째 동작이다.
받아 든 다음의 일
천문 동아리 모집글을 명세해서 맡긴 학생에게 글이 돌아왔다. 이제 이 학생은 판정해야 한다.
이 글은 내가 원한 그것인가? 읽는 사람이 정말 “망원경을 만져 본 적 없는 1학년”으로 상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어느새 천문학 용어가 스며들었는가? “들뜨지 않은 말투”라고 했는데 이 글의 말투는 그 정의에 맞는가?
이 판정 작업이 검증이다. 그리고 여기서 알아차릴 것이 있다. 검증의 기준은 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명세할 때 세워 둔 정의를 다시 꺼내 쓰는 것이다.
“들뜨지 않은 말투”를 명세할 때 흐릿하게 썼다면, 검증할 때도 흐릿하게 판정할 수밖에 없다. 받아 든 글이 마음에 안 드는데 왜 안 드는지 말할 수 없는 상태 — 그것은 검증의 실패이기 이전에 명세의 미완성이다.
삼각형의 완성
그래서 두 동작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일을 맡기기 전의 명세와, 결과를 받은 후의 검증은, 둘 다 정의를 다루는 능력의 두 얼굴이다. 3화에서 예고했던 문장을 이제 온전히 펼 수 있다.
흐린 정의를 가진 사람은 흐린 질문을 하고, 흐린 답을 받고, 그것이 흐리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 명세가 흐려서 질문이 흐려지고, 잣대가 흐려서 판정이 흐려지는,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두 증상이다.
거꾸로 말하면 훈련 지점도 하나로 모인다. 정의의 해상도를 올리면 명세와 검증이 함께 좋아진다. 6화의 검증(정의를 아는 사람이 오류를 잡는다)과 8화의 명세(정의한 만큼 시킬 수 있다)가 여기서 만난다. 이 연재의 제목이 “정의의 시대”인 이유가 이 삼각형, 곧 정의·명세·검증에 있다.
교실에서 이 훈련은 어떤 모습인가
거창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이 훈련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질문 하나다. “그 말이 무슨 뜻이야?”
아이가 “이 게임이 더 좋아”라고 말할 때 “좋다는 게 뭔데?”라고 물어 주면, 아이는 재미와 공정함과 친구가 하는지 여부를 분리하기 시작한다. “이 인물이 더 훌륭해”라고 쓸 때 “훌륭하다는 건 어떤 거야?”라고 물으면, 아이는 자기 잣대를 처음으로 언어화한다.
이 질문은 심문이 아니라 초대다 — 네 머릿속의 흐릿한 것을 함께 선명하게 만들어 보자는 초대. 낱말의 해상도를 올리는 이 대화가, 어떤 최신 도구 교육 못지않은 AI 시대 준비 교육이다. 도구는 바뀌어도 이 능력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훈련을 백 년 넘게 정식 종목으로 삼아 온 과목이 학교에 이미 있다. 흔히 계산 과목이라고 오해해 온 그 과목이다.
다음 화 — 10화. 수학은 정의를 다루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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