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10화 — 수학은 정의를 다루는 훈련이다
지난 화 끝에서, 정의를 다루는 훈련을 백 년 넘게 정식 종목으로 삼아 온 과목이 이미 학교에 있다고 했다. 수학이다. 다만 그 과목을 오랫동안 다른 이름으로 불러 왔다. 계산이다.
계산기는 수학을 끝내지 못했다
휴대용 계산기가 보급되던 시절, 비슷한 질문이 이미 한 번 있었다. 기계가 계산을 다 해 주는데 수학을 왜 배우는가. 반세기가 지났고, 수학은 끝나지 않았다.
계산기가 끝낸 것은 수학이 아니라 계산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의 본체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 본체가 무엇인지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작동 방식을 보면 드러난다. 수학은 정의를 세우고, 그 정의의 귀결을 끝까지 밀고 가는 학문이다.
모든 수학책의 모든 장은 정의에서 시작한다. “1보다 큰 자연수 중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수를 소수라 한다.” 이 한 문장을 놓는 순간, 그 뒤의 모든 정리는 이 문장에서 흘러나온다.
수학에서 말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수학자들이 온순해서가 아니라, 용어의 정의가 미리 완전히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1은 소수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곧잘 던지는 이 질문은 보기보다 깊다. 정직한 답은 이렇다. 그렇게 정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을 소수에 넣으면 “모든 수는 소수의 곱으로 유일하게 표현된다”는 아름다운 정리가 지저분해진다(1을 몇 번이든 곱할 수 있으니 유일성이 깨진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1을 빼는 쪽으로 정의를 선택했다.
정의는 하늘에서 내려온 진리가 아니라, 귀결을 저울질해서 고른 약속이라는 것 — 이 감각이 수학 교육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 중 하나다.
이 감각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은 수학을 전혀 다르게 겪는다. 정의를 약속으로 읽는 학생에게 새 단원은 “이번엔 무엇을 약속하고 시작하나”를 확인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정의를 암기 항목으로 읽는 학생에게 수학은 이유 없는 규칙의 더미가 된다.
실제로 수학이 무너지는 지점을 들여다보면, 계산력보다 먼저 무너져 있는 것이 정의다. “함수가 뭐야?”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함수 문제를 백 개 푸는 일은 가능하고, 흔하고,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수학이 통째로 캄캄해진다.
AI 시대의 수학 과목
이제 이 연재의 맥락에 놓아 보자. 계산은 완전히 기계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면 수학 시간에 남는 것, 남아야 하는 것은 수학의 본체, 곧 정의를 세우고 읽고 그 귀결을 추적하는 훈련이다.
그리고 이 훈련은 9화의 삼각형과 정확히 겹친다. 정의를 정확히 읽는 학생은 명세를 정확히 쓰는 어른이 되고, “이 답이 정의에 맞는가”를 따져 본 학생은 기계의 출력을 판정할 줄 아는 어른이 된다. 수학은 계산의 과목에서 정의의 과목으로 다시 읽힐 때, AI 시대의 중심 과목이 된다.
그런데 정의가 약속이라면, 자연스러운 다음 질문이 있다. 약속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다음 화 — 11화. 정의를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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