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육] 11. 수학적 사고 : 정의를 바꾸면 무엇이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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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11화 — 정의를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난 화에서 수학의 정의는 진리가 아니라 귀결을 저울질해 고른 약속이라고 했다. 오늘은 그 약속을 바꿔 본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고법이 문제 해결에서 갖는 힘이다.

이천 년 묵은 약속을 바꾼 날

유클리드 기하학에는 다섯 개의 공준, 곧 증명 없이 받아들이는 출발점의 약속이 있다. 그중 다섯 번째, 평행선 공준은 이천 년 동안 수학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다른 넷보다 길고 덜 자명해 보여서, 수많은 사람이 이것을 나머지에서 증명해 없애려 했고 모두 실패했다.

19세기의 몇몇 수학자는 방향을 뒤집었다. 증명하려 애쓰는 대신, 약속을 바꿔 보면 어떻게 되는지 밀고 가 보았다. 평행선이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고 하면? 혹은 아예 없다고 하면? 모순이 터져 나올 줄 알았던 자리에서, 놀랍게도 멀쩡히 작동하는 새로운 기하학들이 열렸다.

구부러진 공간의 기하학이었다. 그리고 몇십 년 뒤, 아인슈타인이 휘어진 시공간을 기술할 때 필요했던 언어가 이것이었다. 약속을 바꿔 본 순수한 사고 실험이, 우주를 읽는 문법이 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위인의 천재성이 아니다. 교훈은 동작 그 자체다. 정의를 바꾸면 다른 세계가 열리고, 어떤 세계가 열리는지는 끝까지 밀고 가 봐야 안다.

막힌 문제는 정의에서 풀린다

이 동작은 수학 바깥에서 더 자주 쓸모를 발휘한다.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대개 답을 더 세게 찾는다. 그런데 오래 막힌 문제는 답이 아니라 문제의 정의 쪽에 손을 대면 풀리는 경우가 많다.

동아리 홍보글이 계속 마음에 안 든다면, 글을 백 번 고치는 대신 “성공적인 모집”의 정의를 바꿔 볼 수 있다. 많이 오는 것이 성공인가, 오래 남을 두 명이 오는 것이 성공인가? 정의를 후자로 바꾸는 순간 글의 방향이 통째로 바뀐다.

성적이 고민인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의 정의를 “빨리 푼다”에서 “설명할 수 있다”로 바꾸면, 공부 방법 전체가 재배열된다. AI와 일할 때도 같다. 같은 요청을 반복해서 실망하는 사람과, 요청 속 핵심 단어의 정의를 바꿔서 다시 묻는 사람은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다.

가정을 만지는 손

이 감각, 곧 정의와 가정은 만질 수 있는 것이고 만지면 귀결이 바뀐다는 감각은 이 연재 후반부에서 계속 다시 등장한다. 미리 말해 두면, 이것은 대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규칙을 바꿔서 놀아 본 유아는 이 감각의 씨앗을 이미 갖고 있다(그 이야기는 3부에서 한다). 고등학생의 모델링 프로젝트는 이 감각의 완성형이다.

여기까지 정의·명세·검증의 원리를 펼쳤다. 그런데 1화에서 미뤄 둔 약속이 하나 있다. “어떤 절차는 여전히 몸에 새겨야 한다”고 했던 그 약속이다.

탑다운과 정의의 이야기가 충분히 쌓인 지금이, 그 이야기를 정면으로 할 때다.

다음 화 — 12화. 그래도 몸에 새겨야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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