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12화 — 그래도 몸에 새겨야 하는 것들
1화에서 미뤄 둔 약속을 지킬 차례다. “그러니 절차 연습은 필요 없다”가 아니라고 했었다. 오늘은 이 연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강한 반론을 정면으로 다룬다. 피하지 않고 다루는 이유는, 이 반론이 옳은 부분이 실제로 크기 때문이다.
작업기억이라는 좁은 책상
인지과학이 꽤 단단하게 확립해 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생각할 때 쓰는 작업기억은 놀랄 만큼 좁다. 동시에 붙들 수 있는 것이 몇 조각 되지 않는다. 생각은 넓은 홀이 아니라 좁은 책상 위에서 벌어진다.
이 좁은 책상에서 고차원의 사고가 가능한 이유는, 잘 훈련된 기초가 책상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창한 독자는 글자를 해독하는 데 책상을 쓰지 않는다. 해독이 자동화되어 있어서, 책상 전체를 글의 의미에 쓸 수 있다. 반대로 한 글자 한 글자 더듬어 읽는 아이는 해독에 책상을 다 쓰기 때문에, 문장을 다 읽고 나면 내용이 남아 있지 않다.
수학도 같다. 구구단이 자동화되지 않은 학생이 인수분해를 만나면, “어떤 두 수를 곱하면 12가 되지?”를 궁리하는 데 책상을 다 쓴다. 인수분해의 구조, 지금 배우려는 그것을 올려놓을 자리가 없다. 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이 탑다운의 큰 그림만은 아니라는 것, 이것이 반론의 핵심이고, 옳다.
이 연재가 하지 않는 주장
그러므로 분명히 해 두자. 이 연재는 “기초 연습을 기계에 다 넘기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 주장은 작업기억의 병목 앞에서 무너진다. 자동화되지 않은 기초 위에서는 탑다운이고 정의고 작동하지 않는다. 지도를 읽으려 해도, 지도의 글자를 더듬거리면 지형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4~5화에서 말한 탑다운은 사다리의 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오르는 순서와 동기를 재배치하자는 것이었다. 오늘의 논의는 거기에 한 겹을 더한다. 재배치된 여정 안에서도, 어떤 칸들은 반드시 자동화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큰 그림을 먼저 본 아이도 구구단은 몸에 넣어야 하고, 읽기는 유창해질 때까지 읽어야 한다. 필요가 먼저 보이면 그 반복을 견디는 이유가 생길 뿐, 반복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선은 어디에
여기서 진짜 어려운 질문이 나온다. 자동화가 필요한 기초와, 기계에 맡겨도 되는 절차 사이의 선은 어디에 있는가. “다 새겨라”는 AI 이전 시대의 낭비를 반복하는 답이고, “다 맡겨라”는 방금 본 대로 사고의 토대를 허무는 답이다. 두 극단 사이 어딘가에 기준선이 있어야 한다.
이 기준선은 과목이나 단원의 이름으로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학은 새기고 사회는 맡긴다” 같은 구분은 성립하지 않는다.
선은 절차 하나하나에 대해, 그 절차가 사고에서 하는 역할을 물어서 그어야 한다. 다음 화에서 그 질문 세 개를 제안한다.
다음 화 — 13화. 위임의 기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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