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15화 — 롤모델은 왜 여럿이어야 하는가
지난 화에서 아이는 맥락 전체로 배우며, 성장은 하나의 모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했다. 오늘은 그 맥락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 사람을 다룬다.
한 사람만 우러르는 아이
존경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인 아이를 생각해 보자. 아이는 그 사람의 원리만 배우지 않는다. 말버릇을 배우고, 습관을 배우고, 그 사람이 무엇을 무시하는지까지 배운다.
본받음에는 필터가 없어서, 강점과 한계가 한 묶음으로 복사된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은 그 한 사람의 성실한 복사본이다 — 원본보다 흐릿한.
기계 학습에는 이 현상의 이름이 있다. 과적합(overfitting). 하나의 사례에 지나치게 맞춰진 모델은 그 사례는 완벽히 재현하지만, 새로운 상황 앞에서 무력하다.
한 사람만을 배운 아이는 그 사람이 살아 본 적 없는 상황, 곧 아이 자신의 인생 앞에서 참조할 것이 없다.
모순이 아이를 키운다
롤모델이 둘이 되는 순간, 결정적인 일이 벌어진다. 두 사람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모순되기 때문이다. 한 스승은 꼼꼼함으로 탁월하고, 다른 스승은 저지르는 속도로 탁월하다.
둘을 동시에 복사할 수는 없다. 복사가 막힌 자리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추상을 해야 한다. 두 사람이 정반대인데 둘 다 훌륭하다면, 훌륭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을 알아보시겠는가. 9화에서 본 그 훈련(“그 말이 무슨 뜻이야?”)이 아이의 내면에서 저절로 점화된 셈이다. 여러 모델의 모순은 아이에게 자기만의 정의를 만들도록 강제하고, 그 정의들의 묶음이 곧 아이 자신의 종합, 누구의 복사본도 아닌 자기 모델이 된다.
롤모델이 여럿이어야 하는 이유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학습의 구조다. 다양한 맥락에서 배운 모델만이 새로운 상황에 일반화한다.
수백만 명이 같은 목소리와 자란다면
여기서 이 시대만의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오늘의 아이들 곁에는 언제나 대답해 주는 상대인 AI가 있고, 그 비중은 커져 간다. 그런데 수백만 명의 아이가 같은 모델과 대화하며 자란다면, 그것은 인류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규모의 단일 롤모델 실험이 된다.
한 아이에게 단일 롤모델이 과적합을 낳는다면, 한 세대가 같은 목소리의 결을 흡수하며 자라는 것은 무엇을 낳을까.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 규모의 질문이고, 연재 마지막의 거버넌스 논의에서 정면으로 다룬다.
은유의 종착점: 편집권의 이양
지난 화에서 미룬 경계도 여기서 풀 수 있다. 아이는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는 모델이 아니다. 처음에는 주어진 맥락을 흡수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자기 맥락을 고르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을지, 이 사람을 가까이할지, 이 질문을 붙들지.
그렇게 보면 교육의 종착점이 선명해진다. 맥락의 편집권을 아이에게 서서히 넘겨주는 것.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학습의 재료를 스스로 고르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편집권을 넘겨받을 아이에게, 지금 무엇을 연습시켜야 할까. 다음 화에서 세 가지를 제안한다.
다음 화 — 16화. 위인전, 기초 지식, 맥락 발굴법 — 3대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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