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육] 3. 활용교육 : 프롬프트 교육만으로 부족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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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定義)의 시대 — AI 이후의 학교』 연재 3화 — “AI 활용 교육” 그다음의 질문

앞의 두 화에서 숙제가 서 있던 세 전제 — 절차를 숙달하면 사고력이 생긴다, 지식을 보유한 만큼 교육받은 것이다, 결과물은 학습의 증거다 — 가 새 조건 위에 서게 된 과정을 보았다. 그렇다면 교육은 이제 무엇을 하면 될까.

“AI 활용 교육”이라는 답

이 상황에서 교육 현장이 내놓는 대표적인 답이 있다. “AI를 잘 활용하는 인재를 기르자.” 프롬프트 작성법을 가르치고, AI 윤리 교육을 하고, 디지털 리터러시 과목을 만드는 것이다.

필요한 답이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닿지 않는 층이 하나 남는다.

도구 사용법은 도구와 함께 빠르게 바뀐다. 지금 배우는 프롬프트 요령은 다음 모델이 나오면 새로 익혀야 한다.

더 깊은 이유는, “활용”이라는 말이 활용할 무언가가 이미 학생 안에 있다고 가정한다는 점이다. 판단할 기준을 갖춘 사람에게 강력한 도구는 날개가 되지만, 기준이 아직 자라지 않은 사람에게는 도구가 판단을 대신하게 된다. 그래서 활용 교육은 그 자체로 완성이 아니라, 더 앞선 질문을 부른다.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절차와 지식과 결과물을 맡아주는 시대에, 인간에게 남고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능력은 무엇이며, 학교는 그것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이 연재의 방향

이 연재가 제시할 답을 미리 요약하면 이렇다. 남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지도를 그리는 능력이다. 절차의 사다리를 아래에서부터 오르는 대신, 전체 구조를 먼저 보고 필요한 곳으로 내려가는 탑다운의 사고. 이것은 지금까지 소수의 학습자만 누리던 것이었다.

교사 한 명이 학생 서른 명의 서로 다른 “왜?”에 답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는 모두를 같은 사다리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의 제약 안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설계였다.

AI 튜터는 바로 그 제약을 푼다. 전제를 바꾼 기술이, 새로운 설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 역설은 다음 화부터 다룬다.

다른 하나는 정의(定義)하는 능력이다. 기계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언어로 고정하는 일이고, 기계의 출력을 검증하는 것은 용어가 제 뜻으로 쓰였는지 판별하는 일이다.

명세하는 힘과 검증하는 힘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그 뿌리가 정의다. 흐린 정의를 가진 사람은 흐린 질문을 하고, 흐린 답을 받고, 그것이 흐리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그리고 이 두 능력의 밑바닥에는 더 깊은 층이 하나 있다. 아이는 수업에서만 배우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을 통과해 간 맥락 전체(집에서 오가는 말, 교실의 공기, 곁에 있어 준 어른들)로 배운다.

한 아이가 청소년을 거쳐 성인이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모델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며, 그렇게 보면 교육이란 가르치는 일이기 이전에 맥락을 설계하는 일이다. 왜 롤모델이 하나보다 여럿이어야 하는지, 왜 수백만 명의 아이가 같은 AI와 대화하며 자라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 규모의 질문인지도 같은 자리에서 밝혀진다. 이 이야기는 연재 중반에서 한다.

절차의 수행과 지식의 인출과 결과물의 생산이 기계의 몫이 되어 가는 시대에, 교육이 기를 것은 구조를 보는 눈과 언어를 벼리는 손이다. 수학이 계산 훈련을 넘어 정의 훈련으로 다시 읽히는 이유, 자연과학이(말과 세계를 대조하는 유일한 훈련장으로서)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이유, 그리고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 말이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습관이 그 자체로 훌륭한 AI 교육이 되는 이유를, 이제부터 한 화씩 다룰 것이다.

숙제는 오랫동안 많은 일을 해 왔다. 연습의 리듬을 만들고, 배움의 과정을 보증하고, 아이가 책상 앞에 매일 다시 앉게 했다. 그 일들은 지금도 필요하다.

다만 이제 그 일을 숙제 혼자서는 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숙제가 하던 일을 무엇이, 어떻게 이어받을 것인가 — 그것이 이 연재의 질문이다.

다음 화 — 4화. 사다리는 왜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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